"머물 데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불씨는
결국 우리가 보기엔 막연한 버닝일 뿐."
1
종수의 복수 속 비밀
종수가 복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개츠비 벤에 대한 증오도 있겠지만
결국 자신이 사랑한 해미의 실종 때문이었죠.
종수가 칼을 들고 벤을 만나러 갑니다.
차에서 내리는 벤의 대사가 중요합니다.
“해미는 어딨어요?
해미하고 같이 보자면서요. 해미 같이 안 왔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벤은 이전에 종수와의 만남에서 해미가 어딨냐는 질문에
그냥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게,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벤의 습관과 연관성을 가져서,
정말로 해미의 실종에 벤이 직접적으로 관련됐다면,
왜 벤이 종수 말을 믿고 그냥 찾아온 걸까요?
상식적으로 이상하죠.
이 상황은
2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A.
해미의 행방불명에는 벤과 직접적 관계가 있다
그리고,
B.
해미의 행방불명에는 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1-A
벤이 종수를 자기가 사는 동네에 처음으로 초대했을 때,
해미에게 작은 마술을 보여주며
화단에서 주워 온 작은 돌을 하나 건넵니다
그러고는 말하죠.
“재밌잖아. 재미만 있으면 난 뭐든지 해.”
어쩌면 벤은 종수의 그 전화가
‘재미있어서’ 나온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벤은 종수 씨는 너무 진지한 거 같다고 말한 적 있죠
그 진지함이 어디까지 가는 지
한번 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게 맞다면,
관객에게 (또한 종수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장면이 많겠죠
벤은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게 취미라 했습니다
종수는 그 말에 지레 겁을 먹고
전소된 비닐하우스의 흔적을 계속 찾아다니죠
하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네요.
이제 종수의 머릿속에서 해미가 떠오릅니다
마침 벤은 그녀가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말했죠
거기서 ‘비닐하우스 = 해미’라는 메타포에 정당성이 생깁니다.
벤의 화장실 서랍에서
분홍색 시계가 발견된 것도 수상해 보이겠고요.
이후 벤의 고양이가 사라졌을 때
종수는 아예 노골적으로,
숨어있던 고양이에게 다가가서 보일아, 라고 불러봅니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가까이 다가오죠
종수는 해미의 실종에 벤이 연관됐다고 생각한다는 걸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첫 대사입니다.
이전에는 머릿속으로 그렸다면 이번에는 대놓고 불러보니까요.
모든 메타포의 연관성을 찾아냈다는 게
종수의 생각이기도 하고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들의 첫 생각이기도 할 겁니다.
2
메타포라는 베일을 쓴 벤
대체 벤이 저지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죠
벤은 여자들과 지내다가
그들에게서 ‘하품이 나올만큼’ 재미없는 면을 발견하면
죽여버리는 사이코패스인거죠.
마침 해미가 가족과 친구로부터 멀리 하며 생활하니
실종돼도 관심 가질 이도 별로 없을거고요
해미 같은 여자만 만나고 다니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리고 분홍색 시계를 비롯하여
벤의 화장실 한 켠에 보관된 모든 악세사리가
그 여자들의 마지막 흔적인 것이구요.
벤이 요리하면서 해미에게 건넨 말이 떠오릅니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건, 내가 생각하고 무얼 하는 걸
내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어서에요
그리고 더 좋은 건 내가 그걸 먹어버린다는 거지.
인간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듯이.”
“난 나 자신을 위해서 제물을 만들고
그것을 먹는거야”
제물이라는 메타포가 해미를 의미한다면,
벤이 해미 같은 여자랑 사귀는 이유가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1-B
벤이 해미의 실종과 무관하다면..
만약 이게 맞다면,
벤이 찾은 모든 단서는 알고보니 다 부질없는 것이겠죠.
종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메타포를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여
화를 자초한 셈입니다..
분홍색 시계가 그렇습니다.
사실 그 시계는 이벤트 증정용임에도 알 수 있듯이 꽤나 흔한 건데요.
보일이도 그렇습니다.
“여기선 원래 고양이 못 키우게 돼있는데?”
종수가 해미 집 앞에서 이웃 아주머니에게 들은 말입니다.
애초에 고양이는 이 영화에 등장한 적이 단 1번뿐이고
그 한 번은 심지어 벤이 사는 동네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종수의 정당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말죠
고양이 주인 해미가 불러도 안 나오는 고양이가
과연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3
귤 판토마임 그리고 베이스
해미가 종수와 가진 술자리에서 얘기한 귤 판토마임.
“여기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먹으면 돼, 그게 다야
중요한 건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입에 침이 나오고 진짜 맛있어”
영화에 어떤 메타포가 나옵니다.
우리는 이 메타포를 보며 그 속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메타포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은 것일수도 있죠.
판토마임이 그렇습니다.
해미의 판토마임을 보며 손 위에 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해미는 말하죠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된다고.
중요한 건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라고.
‘귤’을 메타포가 품었을 의미라고 생각해봅시다.
판토마임을 보면서
종수는 손 위에 귤이 있다고 생각하듯이,
글을 읽으면서
관객은 메타포 안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진짜 귤이 없는 것처럼,
의미 자체도 어쩌면 없을 수도 있다는 거죠
우리가 있다고 생각할 뿐인겁니다.
판토마임에 몰두하면
귤이 그 곳에 없다는 걸 잊어버리게 되듯이,
예술에 몰두하면
글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럼 결국 관객에게 중요한 건
귤을 먹고 싶은 마음,
그러니까 의미를 느끼고, 음미하고 싶다는 마음이겠습니다.
저는 이 점이 후반부에 나오는,
벤이 종수에게 말한 ‘베이스’ 얘기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종수 씨는 너무 진지한 것 같애
진지하면 재미없어요
죽여야지
여기서, 베이스를 느껴야 돼요
뼛속에서부터 그게 울려줘야 그게 살아있는거지.”
베이스라 함은 관객을 압도하는 예술의 힘일 겁니다.
메타포에 얽매이지 말고
진지함을 내려놓고, 그 울림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는거죠.
그렇게 진지한 게 싫으니
부시맨 같은 이야기에 하품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사전녹화된 오페라 장면이 연상됩니다.
대부분의 메타포는 인물 간에 이뤄지는데,
‘귤 판토마임’, ‘베이스’의 경우는
어쩌면 감독이 관객에게 말하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하네요.
4
메타포를 음미할 여유가 없는 종수
하지만 종수는 벤과 달리
메타포를 즐기지만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죠
당신이 지금 원인을 알 수 없는,